눈을 떠도 감은 것만 같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던 시골의 밤. 처음엔 단지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답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눈을 꿈뻑이다가 내가 눈을 뜨거나 감아도 보이는 것에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았죠. 그리고 몸을 뒤척이며 시간을 보내다가 혹시 나홀로 시야를 확보하지 못해 헤메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졌습니다.
눈먼 자들의 도시의 내용 중에서 백색실명이 전 인류에게 퍼지기 전, 전염성이 강한 '질병'으로 판단해 많은 사람들을 수용소에 가둬놓는 내용이 있습니다. 수용소는 금새 원초적인 본능이 지배하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본래부터 눈이 성치 않았던 사람은 수용소에 들어가 다른 이들보다 상대적으로 경험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을 수 있었죠. 그런데 모두가 시야의 확보가 어려웠던 때에 그가 수용소에 섞여 들어간 것이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자기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려운 상황. 그러나 실명에 대한 경험적 우위로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공동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편익과 안전을 위해 강자의 편에 설 수 있었습니다. 그가 나서서 자신의 경험적 지식을 나누는 시도를 했더라면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었겠지만 그렇다고 그의 행동을 비난할 수는 없었습니다.
현실에서의 정보 접근성 차이는 더욱 크게 존재 합니다.
소설 속의 상황이 바로 앞의 일도 예측할 수 없었던 때를 그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희생정신을 발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가 현실에서 그들에게 자행하고 있는 일입니다. 소설속에서는 단 한명이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눈앞의 이익을 위해 그들을 위한 작은 배려마저 외면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입니다.
(추가)그러나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이 눈을 뜨고 있었지만 그들과 어울려 자신 외의 다른 모든 사람들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또 희생하는 모습으로 희망을 지켜갑니다.
그렇다면 IT업계에서는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근래 들어 '웹접근성'의 중요성이 부각되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현 직장에 들어와 처음으로 맡은 프로젝트 역시 사내에서 통용될 웹표준가이드의 웹접근성을 정의하고 그 기준안을 제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국내, 외에서 웹접근성과 웹표준화를 외치고 계시는 분들을 알게(물론 혼자만...) 되었습니다.
해외에서의 W3C/WAI는 물론 국내에서도 웹접근성의 표준인 KWCAG 1.0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정보통신 접근성 향상 표준화 포럼을 지켜보고 있자면 민간기업의 참여 역시 꾸준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장애인 차별법/웹접근성 차별 진정사례 등 법적인 구속력으로 인해 바뀌어야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관련 종사자들의 노력 덕분에 웹 접근성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기도 하여 지금 처럼 웹접근성 향상을 위한 관심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봅니다.
Save the Accessibility,
Save the world!
저는 이 분들이 바로 세계를 구할 진정한 영웅들이라고 생각합니다.